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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름

도전의 역사(力士) 유인호
  • 등록일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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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2020년 스포츠발전 공헌자 구술채록 대상자로 선정된 유인호는 구술채록 사업 과정 중 1950년대  ~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 여권, 올림픽 패스권 등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의 국제대회 활약상을 엿볼 수 체육 유물 63점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필리핀 'The Evening News' 1954년 5월 7일 자, 'Asian Weightlifters Break World Marks in Press, Jerk(아시아 역도인이 용상 세계 신기록을 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에 게재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기를 번쩍 들어 올린 청년의 가슴 정중앙에 수 놓인 태극기가 보였다. 기사는 해당 청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World Record Maker - Yu In Ho, Korea StrongMan, yesterday Established a new world mark of 285lbs in the clean and jerk of the bantamweight weightlifting championship at the La Salle gymnasium.'
(세계신기록 수립자 - 어제 라세일 체육관에서 개최된 역도 밴텀급 용상 경기에서 한국의 역사 유인호가 285파운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

신문 속 주인공, 그는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도인 유인호이다.

동족상잔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4년 5월 7일, 유인호는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 역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그는 자신의 체급(밴텀급)에서 세계신기록(용상 285파운드, 129kg)을 수립하며 아시아 최정상에 올랐다.

이러한 그의 맹활약은 전쟁 직후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이 큰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1954년 5월 15일, 국가대표 선수단은 복귀 신고를 위해 경무대(現 청와대)를 방문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선수단 틈에 보이던 유인호를 가리키며 ‘이렇게 조그마한 사람이 그렇게 기운이 센가?’라고 말하며  작은 체구를 가진 유인호의 세계신기록 수립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하였다.

이후 유인호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지속하며 격동의 시기 대한민국 역도계의 간판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 신기록을 수립 및 경신하며 약 12년 동안 국가대표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 3회, 아시안게임 3회, 각종 국제대회 등을 출전하여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다.

유인호는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안게임 밴텀급 동메달을 끝으로 은퇴하여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선택하였다.

2020년 유인호는 스포츠발전 공헌자 구술채록 사업을 통해 자신의 역도 인생을 기록화하였고, 관련 유물 63점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위 유물은 당시 기증받은 유물로써 유인호가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 참가선수여권이다.

박규태 주임(박물관준비팀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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