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박상하는 1945년 8월 15일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배구, 고등학교 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하였고 달성군 구지면 체육회장을 시작으로 체육행정에 뛰어들었다. 1994년 국제정구연맹 회장에 6회 연속 선임되었으며 임기중 별세하였다.
박상하는 펜싱협회 부회장, 경북체육회 하키연맹 회장, 경북체육회 부회장, 대한정구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바르셀로나 올림픽 홍보대책위원장,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단장,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국내외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81년 당시 필드하키는 선수 육성과 저변 확대를 위한 투자가 어려울 정도로 비인기 종목이었다. 박상하는 필드하키를 인기종목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경북체육회 하키연맹 회장직을 수락하고 꾸준히 투자를 하였다. 그 결과 1985년 제14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초전중학 여자하키팀이 서울 대방여중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했는데, 당시 대방여중은 여중하키 최강팀으로 평가받던 팀이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은 응원을 하러 온 마을 사람들과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려 경기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전한다(동아일보 1985년 5월 27일자). 박상하는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독려하고 우승의 기쁨을 함께 즐겼다. 또 시상식때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수여하였는데 이때 스포츠 분야에서만큼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통하는 것이 없음을 실감하였다.
1994년에는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단장직을 역임하였다. 단장직을 수행하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또 동시에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호흡하였다. 한국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55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금메달 63개 은메달 56개 동메달 64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위 사진은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핸드볼 우승 후의 모습이다. 박상하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새벽마다 선수촌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의 상태를 확인하였다고 한다. 선수들을 생각하는 박상하의 모습이 이러한 사진이 만들어진 배경이 아니었을까.
김희태 학예사(박물관준비팀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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