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1927년 경성사범학교 생도 모집 전단지 앞면/뒷면
이 자료는 평범한 ‘1927년도 경성사범학교 생도 모집’ 전단지로 보이지만, 그 뒷면에서 빽빽하게 쓴 편지가 발견되었다. 당시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를 다니던 일본인 학생이 본토 나가노(長野)현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것으로, 식민지 조선에 와서 자신과 함께 사범학교를 마치고 안정적인 교원이 되자는 내용이다. 여기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 교원부족 현상으로 인해 일본인 입학생에게는 공납금과 수업료가 전액 무료이고 매월 15원씩(오늘날 150만원) 학비 보조금까지 지급된다는 파격적인 혜택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편지 속에는 식민지 조선의 애환과 함께 당시 학교체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 있어 주목된다.
“(전략) 이 곳 경성사범학교의 생도는 3/4 이 조선인일 정도로 점점 일본인의 입학률이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네. 조선인보다 우수한 우리 일본인들이 보다 많이 조선에 와서 안정된 교원이 되었으면 하네 . 더구나 내년부터는 체조(체육) 과목이 개정되어 일본처럼 병식교련이 실시된다하니 자네처럼 재능 있는 이들이 체조학과에 지원하면 반드시 합격할거라 생각되네. (중략)”
당시 일본의 학교체육 정책은 조선의 높은 교육열을 이용한 우민화 전략이 목적이었다. 따라서 체육도 각종 운동경기의 과열화를 조장하여 민족을 이간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우리 민족은 오히려 학교체육을 통해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맞서기 위한 자긍심을 키워나갔다. 이 편지는 비록 우리 민족이 아닌 일본인의 육성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전달 하고 있지만, 역으로 당시 조선인이 겪은 비극의 한 단면을 증언해 주는 소중한 사료(史料) 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체육의 역사 속에는 우승과 메달의 영광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기에 흐르는 세월 속에 지난 세대의 이야기들이 잊히지 않도록,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하고 또 해야 한다. 그것이 체육박물관의 건립 이유인 것이다.
홍인국(체육박물관추진단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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