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1970년 궁도시범학교, 시범대회(경기여고)
김형탁은 이 사진과 함께 스승인 故 석봉근과 본인의 소장 자료 2,000여점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이 되는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양궁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 양궁이 지금의 세계 최장이 되기까지, 그 기반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양궁 역사 속에 한 장면을 통해 들여다보려고 한다.
양궁의 시작은 어느 체육교사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수도여고 체육교사였던 고 석봉근은 청계천 고물상에서 구입한 양궁 활대와 교본을 독학하여 교내 학생들이게 양궁을 가르쳤다. 당시 문교부(문화교육부)는 안보체육의 일환으로 남자고등학교에서는 태권도,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양궁을 중점 교육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전국 여고 중에 시도별로 양궁시범학교를 지정했다. 양궁시범학교로 10개의 지역, 23개의 학교가 지정되었으며, 서울의 서울여고, 무학여고, 경기여고, 부산의 부산진여상, 동아대부속여고, 속초여고, 홍천여고, 충청북도의 보은여고, 제천여고, 경상북도의 경주여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교부는 시범학교 내 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궁도지도자 강습회를 실시하여 양궁육성 책임교사로 양성하였다.
이 사진은 1970년 10월 16~17일에 경기여고에서 열린 첫 양궁시범학교 대항 시범대회 모습으로, 경기 후 선수와 경기위원들이 표적지에 모여 성적을 확인하고 있다. 당시 대회에 경기여고, 서울여고, 인일여고, 경주여고 등을 포함한 15개 학교, 125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경기는 30m와 20m 더블라운드 방식으로 실시되었고 접점 끝에 광주여고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사진을 기증한 김형탁 원장(김형탁양궁훈련원)도 경주여고 감독으로 사진 속 시범대회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그는 경주여고에서 처음으로 양궁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4년 후 1984년 LA올림픽에서 양궁 금메달(서향순)과 동메달(김진호)을 획득하는데 있어서 감독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최초 국가대표코치를 지낸 박애성, 한국신기록을 최초로 수립한 오영숙도 참가했었다고 한다.
안보체육종목으로 채택된 양궁은 양궁지도자로 훈련받은 체육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다른 종목에 비해 빠르게 발전해갔다. 양궁 1세대의 선수들 대다수가 학교에서 양궁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이유이다. 지금 빛나는 대한민국 양궁의 성과는 1970년대부터 故 석봉근, 정갑표 등 체육교사들의 노력과 문교부의 지원에서 비롯되었다.
박효정(전시준비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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