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전선자전거대회 관련 기사가 실린 조선중앙일보 (1934년 6월 5일자)
일제강점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로 자전거대회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자전거대회는 최고의 속도감을 선사하는 스포츠로, 곡마단 서커스 못지않은 구경거리였기에 관중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기에 어느 날 엄복동(1892∼1951)이라는 자전거 점포 청년이 등장하게 되면서 훗날 조선인 최초의 스포츠 스타이자, 민족의 자존감을 되찾아준 영웅이 되었다. 그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아침부터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우리 민족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입어 일본인들의 온갖 방해를 무릎 쓰고 늘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신문기사는 <조선중앙일보> 1934년 6월 5일자에 실린 전조선자전거경기대회를 군산 운동장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비록 엄복동은 1932년 40세 나이로 마지막 우승을 한 뒤 은퇴하여 이 대회에서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이룬 우승을 후배 선수들이 다시금 이뤄주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갖고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을 것이다.
이 대회의 부상으로 1등은 ‘白米一俵’ 즉 쌀 한가마니(당시 20원)였고, 2등에게는 반값인 10원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회가 열린 군산은 일제의 극심한 경제수탈 중에서 쌀이 집중적으로 반출된 아픈 역사를 지닌 지역이었다. 경기 결과에 대해 확인되지 않지만 만약 이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일본 선수와 경쟁해서 우승했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수탈하기 위해 거둬들인 쌀을 우리가 다시 되찾아온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00주년을 맞는 3·1절이다. 그 의미를 한 번 더 깊게 생각하고 되새겨본다.
홍인국(전시준비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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