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故조병길의 유족 조진하는 1964년 동경 하계올림픽대회 참가기념 메달을 포함하여 농구 세계대회 관련 기념품, 사진 등 총 40점의 유물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위 기증 유물은 1964년 동경 하계올림픽대회(이하 동경 올림픽)의 농구 국제심판 故 조병길의 동경 올림픽 참가기념 메달이다. 동경 올림픽은 '올림픽'이라는 세계무대를 통해 우리나라 체육의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대회였다. 동경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농구대표팀은 16위라는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축구 역시 3연패를 기록하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렇듯 대한해협을 건너 들려오는 소식은 국민들이 기다리던 승전보가 아니었다.
1964년 10월 10일, 동경 올림픽 경기장, 15일간의 동경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총 93개국 7500여명의 젊은이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입장순서는 46번째, 청명한 동경의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이기 시작하였다. 레슬링의 최종명 코치가 들어 올린 태극기를 필두로 17개 종목, 154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단(이하 선수단)이 입장하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이었다.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 또한 높았다. 우리 선수단의 결의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벽은 높았다.
선수단은 복싱의 정신조(밴텀급)와 레슬링의 장창선(자유형 플라이급)이 각각 은메달을, 유도의 김의태(미들급)가 동메달을 목에 걸며 간신히 노메달의 수모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모두가 실망한 올림픽 성적표였다. 하지만 1964년 동경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대회라는 점에서 체육사적 의미를 갖는다. 동경 올림픽을 준비하고 경험하며 합숙이 가능한 종합스포츠 훈련시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1966년 6월 30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산실 '태릉선수촌'이 우여곡절 끝에 개촌식을 진행하였다. 이는 동경 올림픽에서 참패를 반면교사 삼은 결과물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전문성 있는 훈련을 통해 양질의 선수를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레슬링-자유형 페더급)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20년 현재 종목을 불문하고 각종 세계대회의 메달을 휩쓸고 있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박 규태(전시준비팀 체육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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