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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름

역도청년 Nam Su Il, 1947년을 기록하다
  • 등록일2020.03.02
  • 조회수26
색인어
꼬깃 꼬깃하고, 모서리 부분은 너덜너덜해진 종이에 새 종이를 덧대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상단에는 트로피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남수일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이 붙어 있고, 가운데에는 색상별 원단 조각을 꼼꼼히 박아 놓은 마크가 있다. 하단에는 다음의 기록이 수기로 남아 있다.

‘米州 피야델피야 世界力道大會 時 / 力道服府 마크 見本 / 2位 / Nam Su Il / 36世 時’

1947년 9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세계역도대회가 열렸고 여기에 당시 36세였던 남수일 선생을 비롯하여 김성집, 박동욱 세 사람이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석했다. 남수일 선생은 이 대회 페더급(Featherweight, 60kg)에서 추상 95.0kg, 인상 95.0kg, 용상 117.5kg으로 총 307.5kg을 기록하여 은메달을 수상했다. 박동욱 선수는 밴텀급(Bantamweight, 56kg)에서 4위, 김성집 선수는 미들급(Middleweight, 75kg)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출전 선수 모두가 첫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한 가운데에 붙어있는 마크는 역도대회 당시 경기복에 부착했던 마크의 견본이다. 해당 경기의 사진자료는 흑백에다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마크는 그 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그려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상단의 사진은 대회 후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에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방문했을 당시 기념으로 촬영한 것으로, 광복 이후부터 1948년까지 미군에 의해 통치 받으며 스포츠 성과도 미군정청에 보고했던 시대상이 녹아 있다. 하단의 수기 중 미국을 뜻하는 ‘米州’는 현재는 몹시 생소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얼마간은 ‘美’와 ‘米’를 혼용하여 사용했다. 필기체로 쓴 ‘Nam Su Il’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남수일 선생의 여권 서명과 비교했을 때 동일인이 적은 것으로 보여, 본 유물은 남수일 선생이 직접 해당 경기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관련된 자료를 부착하고 기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필라델피아세계역도선수권대회 출전 마크와 사진‘은 남수일 선생의 아들인 남영식 님께서 기증해주신 유물이다. 1947년, 남수일 선생은 역도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순위권에 들어 대한민국을 널리 알렸다. 이 유물은 선수로서 남수일 선생의 자긍심은 물론이거니와 당시의 경기모습, 당시 시대상을 복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박선영(전시준비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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