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대한민국 배드민턴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세계대회에서 인정받는 효자 종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배드민턴은 세계 대회 출전도 힘들 정도의 실력이었다.이렇게 배드민턴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성귀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의 노력이 숨어있다.
한성귀는 1961년 전주동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에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 잡았고, 전주농림고등학교, 공군 배드민턴팀,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1979년부터 선수와 코치를 겸임하면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배드민턴 명장 한성귀의 본격적인 행보는 1982년 국가대표팀 남자팀 코치를 맡아 그해 3월 유럽투어에 참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생애 처음 코치로 참가하는 유럽투어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박주봉과 이은구 복식조를 중점적으로 지도하였고,‘제30회 덴마크오픈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국제대회에서의 첫 메달과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인도 뉴델리에서 욜린 ‘제9회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복식 은메달, 여자복식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당시 체력이나 기술에서 앞서있지 못한 우리나라 선수들을 복식경기로 승부를 걸고 두 선수 간의 장단점을 정악하게 파악하고 지도했던 그의 통찰력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성귀는 1986년 2월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1996년까지 15년 동안 국가대표 사령탑의 자리를 지키며 세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근 국제대회를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훈련방법으로 고안하고, 선수들과 소통했던 한성귀 전 감독의 지도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모든 대회에 남다른 철학과 신념으로 지도자로서의 덕망을 쌓아가며 배드민턴의 명장(名將)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배드민턴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한성귀의 지도와 선수들이 흘린 땀의 결실인 것이다. 배드민턴이 “내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하는 한성귀는 후배들을 위해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삼성전기 실업팀 감독으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꿈나무 육성사업’ 총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성귀는 1992년 포상받은 체육훈장 맹호장, 배드민턴과 평생을 함께 했던 선수시절 및 감독시절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37건42점을 2018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백정은(전시준비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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