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필름
기증자 박정숙은 1940년대에 이화여중 농구 및 육상부 선수로 활동했으며, 최초 여성 올림피언인 박봉식의 사진과 이화여중의 다양한 체육활동 사진 등 60점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은 “KOREA” 이름으로 출전한 첫 하계올림픽대회였다. 정환범 단장 및 이병학 총감독과 함께 52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국기를 달고 출전한 선수들의 열정과 투지가 상당했다. 그중에 유일한 여성선수였던 박봉식은 당시 언론과 국민들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1948년 4월 26일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발굴 및 선발하기 위해 열린 올림픽파견선수 최종선발대회에 신예가 나타났다. 투원반 종목에 이화여중 5학년 박봉식이 37m 8cm로 신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이 기록은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의 기록인 33m에 비해도 4미터나 초과한 성과였다. 그녀는 이 기록으로 제14회 런던올림픽 국가대표의 유일한 여성 선수가 되었다.
이 유물(사진)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이화여중 육상부 주최로 교정에서 열린 환송회 참가 모습이다. 런던올림픽 단복을 입고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닌 그녀가 대한민국 최초 여성 올림피언인 박봉식이다. 기증자이자 이화여중 육상부 동창인 박정숙은 박봉식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모든 스포츠 종목을 참 다 잘했다. 전국에서 특출나게 잘했으며, 키도 크고 기운도 셌다.” 또한 동창으로서 참가했던 환송회에 대해 “봉식이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주었고 멋진 친구를 두게 되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고 기억했다. 박봉식도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출전에 대해 “조선여성을 대표하여, 아니 전조선 민족을 대표해서 나가는 만큼 조선 사람도 이렇다는 것을 뽐내도록 힘을 다할 작정이요.” 라고 다짐했다.
1948년 7월 30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경기 첫날, 박봉식은 1차 시도 실격, 2차 시도에서 개인기록에 훨씬 못 미치는 33m 80cm, 3차 시도 파울, 전체 18위에 올랐다. 박봉식은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였기에 국민들도 결과에 아쉬움은 컸지만, 미래가 유망한 어린 선수였던 박봉식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박봉식은 꾸준히 전국체육대회 등 국내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뒀으며 이화여대에 진학한 후에도 육상선수로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뇌막염을 앓다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1950년 이후 그녀의 공식적인 행적이나 기록 및 자료가 없어, 환송회에서 단복을 입고 찍은 이 사진도 그녀의 희귀한 자료가 되었다. 이 유물은 최초 여성 올림피언인 박봉식의 출전에 대한 다짐과 포부를 엿볼 수 있는 사진으로 대한민국 여성스포츠의 세계대회 진출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박효정(전시준비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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